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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아버지의 '포니'부터 아들의 '전기차'까지: 30년 베테랑이 들려주는 자동차 역사 이야기

by 뭐탈래 2025.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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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낡은 운전면허증 사진 한 장

얼마 전, 낡은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빛바랜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제 아버지의 첫 운전면허증이 고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흑백사진 속, 지금의 저보다도 앳된 청년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평생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으셨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처음 운전대를 잡던 그 시절의 자동차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서툰 클러치 조작에 시동을 꺼트리고, 묵직한 핸들을 땀 흘려 돌리며 도로 위로 나섰을 아버지의 첫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그 순간,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 제 첫 차의 시동을 걸던 날의 설렘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제 제 아들은 저에게 전기차와 자율주행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자동차는 3대의 시간을 관통하며 우리의 삶과 함께 달려왔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닙니다. 세계 자동차 역사는 곧 우리 아버지와 나, 그리고 우리 아들들의 역사라는 믿음으로, 한 베테랑 운전자가 3대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자동차 발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시대 - '말 없는 마차'가 도로 위를 달리다
아버지의 시대 - '말 없는 마차'가 도로 위를 달리다

 

아버지의 시대 - '말 없는 마차'가 도로 위를 달리다

혁명의 시작 (1886년-1900년대)

제가 아버지께 전해 들은 자동차의 탄생기는 마치 전설과도 같았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1886년 독일의 한 공학자, 칼 벤츠(Carl Benz)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가 만든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Benz Patent-Motorwagen)’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자동차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강철 파이프와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뼈대 위에 세 개의 바퀴를 달고, 0.75마력짜리 단기통 엔진을 얹은 모습은 ‘말 없는 마차’ 그 자체였죠. 조향 장치도 운전대가 아닌 막대기(tiller)였고, 타이어는 통고무였습니다.  

이 불안정한 기계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베르타 벤츠(Bertha Benz)였습니다. 1888년, 그녀는 남편 몰래 두 아들을 태우고 친정이 있는 포르츠하임까지 약 180 km에 달하는 거리를 왕복하는 장거리 주행에 성공합니다. 이 용감한 여정은 자동차가 그저 신기한 발명품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동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마침내 1886년 1월 29일, ‘가스 엔진으로 구동되는 차량’이라는 이름으로 특허(DRP-37435)를 받으며 자동차의 공식적인 ‘출생 증명서’가 발급되었습니다.  
 

포드 혁명: 세상을 바퀴 위에 올리다

하지만 이 시기 자동차는 여전히 부유층의 값비싼 장난감에 불과했습니다. 이 ‘장난감’을 모든 사람의 발로 만든 영웅이 바로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입니다. 그의 꿈은 원대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갖게 하겠다”는 것이었죠. 그 꿈을 실현시킨 것이 바로 모델 T(Model T)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었습니다.  

1913년 12월 1일, 포드는 도축장의 ‘분해 라인’에서 영감을 얻어 자동차 생산에 ‘이동식 조립 라인(moving assembly line)’을 도입합니다. 노동자들이 차를 따라 움직이는 대신, 차가 노동자들 앞으로 흘러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혁신은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걸리던 시간을 12시간 이상에서 단 93분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자동차 가격은 평범한 노동자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낮아졌고, 이는 미국 사회 전체를 바꿔놓았습니다.  
 

베테랑의 시선: 대량생산의 힘

제가 기억하는 자동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를 선택할 겁니다. 이는 단순히 자동차를 빨리 만드는 기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포드의 진짜 위대함은 ‘생산의 혁신’이 ‘사회의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데 있습니다.

 

값이 싸진 모델 T를 대량으로 팔기 위해선, 그것을 살 수 있는 구매층이 필요했습니다. 포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당 5달러’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평균 임금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죠. 이 높은 임금은 노동자들의 이직률을 낮췄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로 만들었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대량생산-고임금-대량소비’의 포드주의(Fordism) 모델은 20세기 산업사회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마이카(my car)’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인 ‘현대 포니’가 탄생하고 대중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바로 이 ‘대량생산’이라는 거인의 어깨가 있었습니다. 자동차는 그렇게 소수의 전유물에서 우리 모두의 삶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시대 (Era) 핵심 기술/사건 (Key Technology/Event)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 (Impact on Our Lives)
1886 칼 벤츠,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개인의 이동'이라는 개념의 탄생.
1913 헨리 포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자동차의 대중화, '마이카' 시대의 서막.
1973 석유 파동 (Oil Crisis) '연비'와 '효율성'이 자동차 설계의 핵심으로 부상.
1990s SUV의 대중화 자동차가 '이동 수단'에서 '레저/라이프스타일의 도구'로 확장.
2010s 전기차(EV)의 부상 '친환경'과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새로운 가치로 자리매김.
 

나의 시대 - '기름 파동' 속에서 피어난 기술과 개성

위기 속의 기회 (1970년대)

제가 젊은 시절을 보낸 1970년대는 풍요와 낭만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전 세계 자동차 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위기가 닥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1973년, 중동발 석유 파동으로 유가가 하룻밤 사이에 네 배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기름을 물처럼 쓰던 시대는 끝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자동차의 크기와 힘에 열광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화두는 단연 연비(fuel efficiency)였습니다.  

크고 무거운 미국산 머슬카들이 설 자리를 잃은 도로 위에는 작고 효율적인 차들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중심에는 1974년 등장한 '폭스바겐 골프(Volkswagen Golf)'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명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이 차는(공교롭게도 그가 현대 포니도 디자인했죠) 실용적인 해치백 스타일에 경쾌한 주행 성능, 그리고 뛰어난 연비까지 갖춰 시대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했습니다. 골프의 성공은 이후 전 세계 소형차 설계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나의 첫 차: 땀과 기쁨이 밴 쇳덩이

저의 첫 차는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중고 현대 포니였습니다. 요즘 차들처럼 편의 장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었죠. 주차할 때마다 온몸으로 핸들을 돌려야 했던 묵직한 수동 스티어링, 왼발이 저려올 때까지 밟고 떼기를 반복해야 했던 클러치 페달,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반항하던 수동 기어까지. 운전은 그야말로 기계와의 힘겨루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는 낭만이 있었습니다. 엔진의 미세한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기어를 바꿀 때마다 들려오는 착실한 기계음과 교감하며 달리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A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적한 국도를 달릴 때면, 세상의 주인이 된 듯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온전히 나만의 의지로 움직이는 또 다른 ‘나’였습니다.

베테랑의 시선: 보이지 않는 혁명, 전륜구동과 SUV

돌이켜보면 제가 경험한 시대의 자동차 발전 과정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두 가지 조용한 혁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륜구동(Front-Wheel Drive) 기술의 대중화와 SUV(Sport Utility Vehicle)의 등장이었습니다.

 

먼저, 전륜구동은 가족용 자동차의 개념을 다시 썼습니다. 과거의 후륜구동 자동차들은 엔진의 힘을 뒷바퀴로 전달하기 위해 차체 중앙을 관통하는 긴 구동축(driveshaft)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실내 바닥 중앙이 불룩 솟아오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대중화된 전륜구동 방식은 엔진 바로 앞에서 앞바퀴를 굴리기 때문에 이 구동축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차체 중앙의 툭 튀어나온 부분이 사라지면서 평평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겉보기엔 똑같은 크기의 차라도 실내는 훨씬 넓고 쾌적해졌습니다. 이는 폭스바겐 골프 같은 소형차가 ‘가족용 차’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혁명은 90년대에 불어닥친 SUV 열풍입니다. 포드 익스플로러나 지프 그랜드 체로키 같은 차들이 등장하면서, 자동차는 더 이상 출퇴근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높은 차체와 넓은 공간, 그리고 네 바퀴 굴림의 안정성은 사람들의 여가 생활을 바꿔놓았습니다. 주말이면 짐을 가득 싣고 캠핑을 떠나고, 스키 장비를 싣고 겨울 산으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이동’의 수단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고 실현하는 도구로 확장된 것입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태우고 강가로, 산으로 떠났던 그 시절의 추억이 생생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시대 - '스마트폰'이 바퀴를 달다

디지털 조종석의 시대

얼마 전, 아들이 새로 뽑은 차의 운전석에 앉아보고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평생 익숙했던 바늘 계기판과 수많은 물리 버튼들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터치스크린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속도계부터 내비게이션, 공조 장치, 음악 감상까지 모든 것이 그 화면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자동차의 대시보드는 이제 단순한 정보 표시판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사령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기 혁명과 세대 차이

아들은 요즘 전기차(electric vehicle) 구매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테슬라, 현대 아이오닉 5 같은 차들의 제원을 줄줄 꿰며 저에게 설명하더군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저에게 자동차란 ‘두둥’하는 엔진의 시동음과 코끝을 맴도는 기름 냄새, 그리고 가속 페달을 밟을 때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으로 정의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자동차는 하나의 ‘스마트 기기’에 가깝습니다. 소음 없는 정숙함, 스마트폰처럼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매끄러운 가속감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물론 전기차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1900년대 초에도 가솔린차와 경쟁했지만, 배터리 기술의 한계와 가솔린차의 대량생산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었죠. 그 잠자던 거인을 깨운 것은 1991년 상용화된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이었고 , 2008년 테슬라 로드스터와 2010년 닛산 리프가 등장하며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열었습니다.  

 

베테랑의 시선: 변하지 않는 자동차의 본질

현재의 자동차 발전 과정은 과거 100년의 변화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빠르고 근본적이라는 아들의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이 거대한 흐름은 자동차의 정체성 자체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30년 넘게 운전대를 잡아온 베테랑으로서 저는 확신합니다. 자동차의 껍데기와 심장이 아무리 변해도, 그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본질이란 바로 ‘사람’을 향한 기술, 즉 안전입니다. 칼 벤츠의 차가 처음 도로를 굴러간 이후, 포드의 안전유리, 1960년대의 안전벨트, 1990년대의 에어백을 거쳐 오늘날 전기차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의 역사는 결국 ‘어떻게 하면 사람을 더 안전하게 이동시킬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의 역사였습니다.  

 

엔진의 굉음이 주는 운전의 즐거움도 소중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아들이 선택할 전기차가 내뿜는 조용한 정숙함 속에서, 저는 100년 넘게 이어져 온 그 묵직한 책임감을 봅니다. 기술의 언어는 바뀌었지만, ‘안전한 이동’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답하려는 자동차의 영혼은 그대로인 셈입니다.

다음 100년의 도로 위에는 무엇이 달릴까?

아버지의 낡은 면허증에서 시작된 자동차 역사 여행은 어느덧 아들의 미래로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자동차의 100년이 넘는 역사는 결국 ‘더 빠르고, 더 편안하며, 더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온 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웨이모(Waymo) 같은 회사는 이미 일부 지역에서 운전자 없는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제 손주 세대는 운전면허증이라는 것 자체를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동차의 실내가 움직이는 거실이나 사무실이 되고, 교통사고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사라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그때가 되면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아련한 추억이 될 겁니다. 묵직한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잡고, 내 의지대로 차선을 바꾸고, 코너를 돌아나가던 그 감각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러셨고,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 아들도 훗날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겠지요. “아빠가 젊었을 땐 말이야, 사람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았단다.” 그 시절의 운전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었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옛날 자동차 이야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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